냉장고야 안녕~

2003년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던 좀 추웠던 날에 지금사는 아파트에 덩그러니 혼자 살고 있을 무렵입니다. 
춘천에서 가평으로 이어지는 외지생활 끝내고 고양시에 정착했을때 냉장고가 하나 필요했었습니다. 
중고를 살까 알아봤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중고냉장고들이 많이 비싸더군요..(제기준에...)

그러다가 동네에 버려진 냉장고를 발견하고 혼자 노끈으로 묶어서 50미터 넘는 거리를 끌어와 저희집에 들이고는 청소 후 사용했습니다. 
오래된 나이를 추정할 수 있는 '골드스타'로고를 보면 주워온 그때 이미 십수년 전에 나온 모델임을 알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냉장고와 함께 10년 넘게 지냈습니다. 
그리고 이제 갈때가 됐군요...

처음 1~2년간 크게 울리던 소리도 어느덧 안정됐는지 소음도 작고 조금씩 새던 물도 안새고 멀쩡해지면서 묵묵히 저희집에서 수많은 먹거리들을 품고 열심히 일해주던 고마운 녀석입니다. 
이 냉장고를 들인 후로 결혼승낙도 얻었고 짧지만 이녀석을 소재로 작품 연재도 했었습니다. 
자물쇠 경첩을 달아 약해진 고무자석을 보완하고 마님이 이쁘게 시트지도 붙여주고 지금까지 마구마구 써왔지만 이제는 내부 플라스틱이 삭아서 무너질 정도가 됐습니다. (모터와 냉각기능은 현재도 이상없습니다. 골드스타 기계식 냉장고의 위엄!!!)

이따가 오후에 새로운 냉장고가 올 예정입니다. 
그동안 고생스럽게 일한 녀석을 폐기장으로 보낼때가 됐습니다.
고마웠고 아쉬우며 미안하고 시원하고 섭섭하군요.

보통 카메라나 컴퓨터, 오디오 같은 기계들에 애정을 쏟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 냉장고만큼은 그동안 제가 만져온 어떤 기계들보다도 더 제 평생에 잊혀지지 않을 좋은 친구였습니다. 

30살 넘게 살았을 우리집 냉장고의 명복을 빕니다.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459739.html

by 박성린 | 2013/08/20 06:11 | 일상/이것저것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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